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리자 톰은 홍역을 피해 이모네 집으로 갔다. 그 집 현관은 바닥에 차가운 돌이 깔려 있었고, 주변은 청소를 하지 않은 듯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으스스하고 조용하기만 한 현관 한쪽 구석에는 아주 오래된 괘종시계 하나가 음침하게 서있었다. 어느 날 밤, 그 괘종시계가 종을 열세 번 쳤다. 잠이 오지않아 뒤척이던 톰은 시계 속이 보고 싶어져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주위는 온통 깜깜했다. 전등 스위치를 못 찾은 톰은 달빛의 힘을 빌리려고 현관 뒷문을 열었다. 널찍한 잔디밭, 온실, 아름드리 주목나무가 달빛을 받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톰은 놀라 다시 현관으로 되돌아왔다. 현관의 모습이 좀전과 달랐지만, 톰은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녀가 톰한테로 다가오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하녀의 눈에는 톰이 보이지 않는지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몇 초 사이, 현관은 다시 제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유령소굴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톰은 뒷문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지난 밤에 보았던 그 정원은 거기에 없었다. 그날 밤, 괘종시계가 막열세 번째 종을 칠 때, 톰은 다시 뒷문을 열었다. 그런데 지난 밤에 본 그 정원이 톰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톰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정원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필리퍼 피어스(1920∼)
영국 근대 판타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몇 안 되는 문장가로 손꼽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로 문장가라는 명성에 걸맞는 묘사력과 기억에 아주 오래 남을 만큼 개성 있는 인물 창조와 완벽하고 균형있게 짜맞춘 구조, 이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있어서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피어스의 대표작으로는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로 잘 그린 실제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살짝살짝 넘나드는 멋진 작품.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와 「내 작은 개」들이 있다. 그녀는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로 1959년에 카네기 상을 받았다.
수잔 아인칙(1922∼) (그림)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39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여 센트럴 어브 아트 & 크래프트에서 공부했다. 아인칙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 그림을 그린 후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위치를 확고히 굳혔다.
1. 홍역을 피해 집을 떠나다
2. 시계 종이 열세 번 울리다
3. 달밤에
4. 대낮에
5. 이슬 속에 찍힌 발자국
6. 문을 지나서
7. 피터에게 편지를 쓰다
8. 사촌들
9. 해티
10. 놀이와 이야기
11. 바다로 흘러가는 강
12. 거위떼
13. 세상을 떠난 바솔로뮤 씨
14. 정보를 찾아서
15. 담벼락 위에서 본 광경
16. 나무 위의 놀이집
17. 해티를 찾아서
18. 창살 쳐진 창문이 둘 있는 침실
19. 다가오는 토요일
20. 천사가 말하다
21. 시간 또 시간
22. 잊어버린 약속
23. 스케이트를 타다
24. 형제가 만나다
25. 마지막 기회
26. 사과
27. 톰 롱을 위한 이야기
- 옮긴이의 말
홍역을 피해 집을 떠나다
톰이 뒷문 층층대에 혼자 서서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분명 화가 복받쳐 나오는 눈물일 것이다. 톰은 작별의 눈길로 정원을 둘러보다가, 그 정원과 피터를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부아가 났다. 이번 방학을 피터와 함께 정원에서 즐겁게 지낼 계획이었는데......
시내 주택에 딸려 있는 정원들은 대체로 손바닥만하다. 롱 씨네 정원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작은 정원이긴 하지만 텃밭도 있고, 잔디밭과 꽃밭도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뒤뜰 울타리 옆에는 가꾸지 않고 내버려둔 땅이 한 뙈기 있었다. 이곳에는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는데, 제법 크기는 했지만 사과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두 소년은 언제든지 마음대로 나무를 타며 놀 수 있었다. 이번 방학에는 나뭇가지 사이에 놀이집을 지을 작정이었다.
톰은 정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 밑을 지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피터, 잘 있어!"
그러자 이층에서 쉰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톰이 현관 층층대로 나가자, 엄마가 여행 가방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방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엄마는 가방을 그대로 든 채 딴소리만 늘어놓았다.
"톰, 홍역을 피해 이런 식으로 쫓기듯 집을 떠나는 게 물론 싫겠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란다. 엄마랑 아빠는 네가 보고 싶을 거야. 피터도 그럴 테고. 어쨌든 피터는 홍역 때문에 즐겁게 지내지 못할 테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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