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간 본성 속에 숨은 냉혹함을 다룬다. 냉혹함은 존경할 만한 강인함으로 발전하거나 무자비한 사악함으로 오용된다. 할머니는 예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냉혹함이나 잔인함, 또는 가차없는 무자비함이 없었다면 아마도 인류는 이세상에 계속해서 존재할 수 없었을 거야. 사람들은 순식간에 멸종했을걸. 요즘 악마 같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아마도 과거에는 성공한 사람의 전형이었을 거야." 이 책에 나오는 레오니데스 일가는 이 냉혹함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들은 비뚤어진 집에 모여 사이좋게 살아가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숨어 있던 비밀과 질투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 (AGATHA CHRISTIE) 정식 이름은 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이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는 1890년 9월 15일 영국의 데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뉴욕 출신의 아버지 프레드릭 앨버 밀러와 영국 태생의 어머니 클라라 버머 사이의 삼남매 중 막내로 어린 시절을 애슈필드라 불리는 빅토리아 양식의 집에서 보냈고 이때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녀는 열여섯에 파리로 건너가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1912년에 영국으로 돌아와 1914년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 남편이 출간하자 자원 간호사로 일했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던 크리스티는 1916년 첫 작품으로 <스타일즈 저택의 수수께끼>를 썼는데 1920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계속 소설을 발표하던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로 1928년 이혼한 후 이듬해 메소포타미아 여행을 하던 중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을 만나 1930년 재혼하였다. 1967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영국 추리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1971년에는 뛰어난 재능과 왕성한 창작욕을 발휘한 업적으로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DBE(Dame Commander of the British Empire-남자의 Knight 작위에 해당) 작위를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받아 데임 애거서가 되었다. 1976년 1월 12일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제1장 ∼ 제26장
다음 날 나는 태버너와 함께 스리 게이블스 저택으로 갔다. 내 입장이 애매하기는 했다. 나는 이 사건에 끼어들 만한 지위가 없었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도저히 그곳에 갈만한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원칙만 따지는 분이 아니었다. 확실히 명분은 있었다. 나는 전쟁 초기에 런던 경시청의 특별 수사팀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경우가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 경력을 참작받아 사건에 관여하는 공식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가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내부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해. 밖에서가 아니라, 집 안에서 그 집 사람들에 대해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지. 네가 그 일을 해 줬으면 한다." 나는 그리고 싶지 않았다. 난 담재를 벽난로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p. 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