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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을 물으면 길이 끝에 묻어나는 천년의 바람, 천년이 향기가 서린 바다가 보이는 산사 지금 나는 그 곳으로 간다. 수천 수만 마리 겨울새가 있는 감추사, 서해 노을이 붉디 붉은 보문사 붉은 단풍잎이 떨어진 정수사, 봄이면 동백꽃 눈이 부신 백련사 남해 바다가 아득한 보리암 지금 나는 그 곳으로 가고 싶다. |
 박원식
1955년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배웠다. 1990년 광중리보 신춘문에에 단편소설 <모래의 섬>으로 당선 같은 해<광주항쟁 10주년 기념 작품집>에 중편 <방패 뒤에서>외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며 여러 매체에 르포와 여행기를 쓴다.
쓴 책으로 <속리산> <산 깊은 강>등이 있다.
이한구 (사진)
신구전문대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월간 <사람과 산>사진부 팀장. 프리렌서로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사진에 담아오고 있다. 현재 <모기>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의재 허백련 -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등을 출간하였다. |
 1. 밤바다엔 달빛 만다라 / 서산 간월암
2. 붉은 단풍빛은 마침내 어디로 가는가 / 강화 정수사
3. 해국 피어 연등처럼 빛 밝네 / 동해 감추사
4. 바보 나침반 / 남해 보리암
5. 작아서 오히려 크다. 단순해서 오히려 그윽하다 / 태안 태국사
6. 성 동백꽃, 그녀의 순결한 몸 열리네 / 강진 백련산
7. 파도소리 드높아 번뇌를 삼킨다 / 김해 망해사
8. 달빛 흘러 풍경이 울린다 / 강릉 등명락가사
9. 무구한 천진에 부처 자락 머무는가 / 통영 용화사
10. 무리 지은 짧은 여행의 황홀 / 강화 보문사
11. 저 바다에 반야이 배 흐르네 / 양양 낙산사
12. 천년의 바람, 천년의 향기 / 경주 감은사지 |
 달빛 흘러 풍경이 울린다
열차 여행을 작정한 순간부터 마음 한구석이 들썩거렸다. 소풍 전날의 아이처럼.
그러고 보니 열차를 타본 때가 언제였는지 대중조차 되지 않는다. 하기야 언제 어디서 왜 열차를 탔는지 그런 사소한 걸 일일이 기억에 새기며 살아갈 필요는 없는 일이겠다. 지구라는 수상한 열차에 실려 시간의 레일 위를 시근벌떡 달리고 있는 나의 머리는 이미 온갖 잡동사니 기억들로 미어져 내일 쯤이면 뺑 ! 하고 터져 버 릴 것만 같은 게 아닌가. 그러니까 오늘 필요한 건 머릿속 휴지통을 비우는 일이겠고, 따라서 열차 여행중에 창밖으로 그 쓸모 없는 물건을 내던져야만 하는 것 이다. 열차는 일쑤 유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무쇠 발굽 으로 지축을 울리고, 연기를 구름처럼 내뿜으며, 벽력 같은 굉음을 토하고 내닫는 철마鐵馬 처럼 어린 영혼을 온전히 휘어잡은 존재가 다시 있었던가. 아스라한 지평선으로 뻗어 나간 궤도 위를 불타는 유성처럼 질주하는 기관차는 그 자체로 우상 이자 반신半神 이었다. 깊은 밤, 멀리서 울리는 기적소리의 세레나데는 또 얼마나 큰 매혹이었던가. 철로 변에서 어린 시절의 한나절을 살았던 나는 칙칙폭폭 기차와 더불어 얼마간의 행복을 누렸고, 얼마간의 푸른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때의 고왔던 아이는 사라지고 후줄근한 중년의 사내가 여기 남아 있을 뿐이다. 그는 지금 휴지통으로 변한 머리를 쩔렁이며 동해 바다로 가는 열차간에 오르고 있다. 이런!만원이군. 눈에 들어온 열차 안 풍경에 일변 낭패감을 느낀다. 출근 시간대의 진절머리나는 지하철 같은 콩나물 시루. 많은 여행자들이 눈덮인 육로를 피해 열차를 택한 모양이다. 지난 며칠 동안 강원도 일대에는 폭설이 내리고 또 내렸다. 배낭 속에 한 권의 책과 캔 맥주 하나를 챙겨 넣을 때부터 은근히 텅 빈 열차간을 기대했지만 막상 표부터가 입석뿐이었다. |
 | << 마음의 행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 >>
세상을 살아가면서 육신은 늘 길의 끝에 서 있다. 육신의 거푸집에 웅크린 영혼이 또한 길에 부대끼고 시달리고 흔들린다. 길 위에서 길을 잃고, 길을 묻고, 길을 헤매는 덧없는 행려. 일찍이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의 천지간에 쉼 없이 길을 가는 영원한 나그네'라 고 읊었던 이백처럼 삶은 어디론가 한없이 떠나는 나그네 같은 것이리라.
'바닷가에 절이 있었네' (고요아침. 박원식 지음)는 복잡한 일상과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마음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책이다. 소나기와 햇살, 그리고 파도소리가 있는 절을 찾아가노라면 어느새 마음의 모든 시름들이 다 풀어지리라 싶다.
이 책은 밤이면 달이 뜨고 달빛이 흐르는 <서산 간월암>에서부터 서해 해지는 노을이 붉디붉게 아름다운 <강화 보문사> 연꽃 방죽처럼 남해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진 <남해 보리암>에 이르기까지 파도소리가 있고 고둥소리가 있는 한국 바닷가에 있는 사찰 12군데를 여행하면서 쓴 에세이. 글과 풍부한 사찰의 사진 속에 담겨진 풍광이 마음을 한층 여유롭게 한다.
<< 일의 끝에 누리는 마음의 여유 그대 떠나라 >>
천년의 바람, 천년의 향기가 서린 바다가 보이는 산사로 가다 보면 어느새 육신은 길이 되고 정신은 맑고 고요해진다. 수천 수만 마리 겨울새가 뜨고 내리는 감추사, 붉은 단풍잎이 떨어진 정수사, 동백꽃이 붉은 백련사 등에 몸을 뉘이다 보면 생의 모퉁이에서 봇짐을 부는 마음의 여유, 한 번쯤 우리가 당도하고 싶은 곳이리라 싶다.
이렇듯이 '바닷가에 절이 있었네'는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갈망이며 떠나고 싶은 자의 욕망을 에세이처럼 풀어 쓴 책이며, 이렇게도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일손을 놓고 잠시 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위해 한 번쯤 떠나고 싶은 곳이 이 책 속에 가득하게 있다. 또한 천년 고찰의 삭은 단청과 닳은 석탑, 선사의 후끈한 법음(法音)을 만 날수 있다. 책 속에는 각 사찰들이 지니는 독특한 특징들 이를테면, 물이 잠기면 걸어서 갈 수 없는 <서산 간월암> 같은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책은 시간과 세파의 강을 건너는 법(法)을, 소리 없는 육성으로 나직나직 들려 줄지도 모른다. 숲을 스치는 바람의 숨결처럼, 바다의 푸른 영혼이 슬며시 나의 내부를 지나갈 때면 세상의 모든 시름들도 다 지나가리라 싶다. 이 책은 조선일보 월간「산」에서 연재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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